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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
문화유적 : 울주군에는 아름다운 울주 8경이 있습니다. 울주 8경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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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생포왜성 설명


장군수와 천수각(天守閣)이 있는 내성

현재 내성에는 장군수와 천수각이 있다. 그리고 북문과 서문도 이곳에 있다. 장군수는 옛날에 이곳에 머물렀던 일본군 장수들을 위한 우물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 성벽이 무너지면서 샘터 위로 돌들이 많이 덮여 우물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천수각(天守閣)은 이 왜성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평소에는 왜장이 머물고 전쟁 때는 전망대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천수각의 건물과 흔적은 없지만 돌계단은 아직 옛 모습 그대로 있다. 이곳에서 사방을 보면 산이 있는 서쪽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향이 트여있어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문(西門)은 왜성 전체로 보면 남쪽 방향이다.

지형적으로 보면 이 문을 나서면 해안으로 갈 수 있어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었을 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문 역시 지금은 돌이 무너져 문의 형태만 있을 뿐이다. 기록을 보면 이 왜성에는 문이 여럿 있는데 오직 서문만 살아 나올 수 있는 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이 지역이 서생면이 된 것도 이 문과 연결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북문(北門)은 '죽음의 문'으로 통한다. 북문은 천수각 바로 위에 있다. 그런데 이문은 문의 이름만 있지 실제로 문은 없다. 따라서 옛날에 이 왜성에 들어왔던 적병 중 이곳이 문인 줄 알고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고 해 죽음의 문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문 아래에는 성의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하수구(下水溝)를 만들어 놓고 있어 일본인들이 왜성 쌓기에 들인 공을 엿볼 수 있다.


99,170㎡에 달하는 외성(外城)

외성에는 현재 전답이 많고 또 주민들도 많이 살고 있다. 현재 성 전체 넓이가 151,930㎡가 되는데 이중 외성이 차지하는 넓이는 99,170㎡ 정도가 된다. 이 면적을 소유자별로 보면 사유지가 1백47필지 그리고 국유지가 11필지로 모두 1백58필지이다. 현대 이곳에는 42가구가 있다. 외성에는 우물과 창표당이 있다. 우물은 농기계 보관 창고 바로 곁에 있고 지금도 물이 많이 고여 있다. 마을 사람들은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 우물에서 솟아나는 물이 너무 깨끗하고 맛이 좋아 광천수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지역에 인가가 많이 들어서고 또 이 마을에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대신 인성사 인근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마시고 있다. 대신 이 우물에서 나오는 물은 인근 농작물을 키우는데 이용되고 있다. 창표당은 이 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를 한 우리 장병들을 위해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선조 32년(1599)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 창표당에는 위패를 안치한 본당 들 건물이 여럿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배 밭에 울주군에서 세워 놓은 표지판만 있다. 이 왜성의 하단부에는 동제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서생포왜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명나라 장군 마귀제독의 위패를 모시고 향배를 올리고 있다. 또 왜성 동문에는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던 명나라 출신의 편갈송 장군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한 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것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워놓고 관리를 하고 있다. 이 왜성은 축성한 지 1년 여만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거대한 성이 일년만에 완공이 되려면 돌을 가까운 곳에서 가져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왜성의 돌이 이곳에서 가까운 숙마섬과 수군만호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사명대사와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의 회담

임진왜란 동안 이 왜성에서는 사명대사와 加藤?正(가토 기요마사) 사이에 휴전회담이 4번이나 열렸다. 당시 사명대사는 웅촌에 있는 운흥사에 머물면서 이 왜성으로 와서 회담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회담은 일본의 무리한 요구로 비록 실패를 했지만, 사명대사는 이 회담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의 당당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왜성을 일본군으로부터 빼앗는 데는 당시 명나라 장수였던 마귀제독(麻貴提督)와 편갈송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왜성에는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유적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후손들이 우리고장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면 지금도 이들 후손들이 서생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해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고 있다. 왜군은 조.명연합군에 패배하여 퇴각하면서 조선인 서생포왜성의 축성자를 일본으로 포로로 데리고 갔고, 현재 일본에서 유명한 구마모토성을 석축하는데 동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후손들이 구마모또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후손들이 서생포 왜성을 방문하였다. 그들의 성씨는 “서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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